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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에 불교는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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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선생 2025. 5. 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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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왕이 불교를 신봉하라는 영을 내린 이듬해인 392년(광개토왕 2)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을 창건하였고, 395년에는 진나라 승려 담시(始)가 교화를 위해 고구려로 왔다.

담시는 불교의 교리연구 및 설법의 이해에 필요한 경률(經律) 수십 부를 가지고 왔고, 수계(授戒)를 베풀어 불제자가 되는 길을 트이게 함으로써 불교역사상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맞게 하였다.


498년(문자왕 7)에는 대동강변에 금강사(金剛寺)를 창건하여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으며, 576 년(평원왕 18)에는 의연(義淵)을 중국 북제로 보내어 정국사(國寺)의 법상(法上)에게 불기(佛 紀) 및 중국의 불교전래 등 불교의 역사전개와 교학(敎學)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배우게 하였다.

그는 대승론서(大乘論書)의 저자 및 저술 연기(緣起), 그 저술이 갖는 영험 등에 관한 것을 자세히 배워가지고 돌아왔는데, 그가 관심을 가지고 새로 가져온 경론(經論)들은 후일에 신라의 학승들이 철학의 전거로 삼아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구려의 불교도 27대 영류왕 때에 들어온 도교의 득세로 말미암아 점차 빛을 잃고 말았다. 도교는 624년(영류왕 7)에 들어왔으며, 643년(보장왕 2)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당나 라로부터 숙달(叔) 등 8명의 도사와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받아들인 뒤부터는 불교를 박대하였다.

사찰을 몰수하여 도관(道)으로 삼았고 그때까지 불교인을 대우하던 자리에 도교인을 앉히는 등 불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였다.
이 갑작스러운 변동에 불교인들 중에는 견디다 못해 외국으로 망명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보덕(普德)은 이를 고구려 멸망의 징조로 여기고 여러 차례 조정에 간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당시 백제 땅인 완산주(完山州: 全州)의 고대산(孤大山, 高達山)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그 뒤 고구려는 곧 멸망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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