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음악의 아버지 바흐

카테고리 없음

by 김쌤선생 2024. 7. 5. 20:12

본문

반응형

클래식 애호가들의 방에 가보면 음반들이 바흐를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다. 보통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기 마련인데, 바흐보다 먼저 정리해야 할 음반들도 보통은 그의 뒤에 둔다. 바흐는 음반정리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바흐에 대한 찬사 중에 베토벤의 말이 인상적이다. 바흐의 이름이 '시냇물'이라는 뜻에 빗대어 베토벤은 "그는 시냇물이 아니라 크고 광활한 바다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말했 다.


베토벤은 바흐를 '화성(聲)의 아버지'라고 대선배로 모셨다. 바흐는 서양음악의 출발점처럼 보이지만, 이전에도 우리에겐 캐논으로 유명한 바흐 시대의 스타 텔레만, 파헬벨이나 헨델이 있었고, 중세시대, 르네상스 시대의 빛나는 음악가들이 있었다. 바흐는 이들 사이에서 이름 그대로 시냇물처럼 조용히 흘렀다.

서양음악의 바로크 시대는 1750년 바흐의 죽음으로 마감될 정도로 바흐는 서양음악사의 절대적인 존재이다. 이 절대성은 서양음악과 기독교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평생 교회를 벗어나지 않고 신탁을 받은 사제처럼 음악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의 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의 명성에 오른 것"이라고 바흐의 전기를 쓴 슈바이처 박사는 말했다.

바흐는 음악에서만 바다처럼 풍요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부인에게서 스무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더불어 바흐 집안은 약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 가족이었다. 이 가계의 6세대를 통틀어 예술가가 아닌 사람은 불과 두세 명에 지나지 않았다.

바흐의 선조인 제과업자이면서 치터(Zither:현악기의 일종)를 연주한 파이트 바흐 이후, 중부 독일 의 튀링겐 지방에서 바흐 가문은 뿌리를 내렸다. 가족들은 모두 루터 정통파의 경건한 신자였다. 파 이트 바흐의 장남이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증조부인 요하네스는 바이마르 거리 악사로서 그 이름은 이웃 고장에까지 전해졌다.
그의 장남인 요한은 바흐 가문 최초의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고, 3곡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다. 요한의 동생 크리스토프가 바흐의 조부로서, 악사로 활약했으며, 동생인 하인리히의 칸타타는 한 곡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하인리히의 장남 요한 크리스토프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동생 미하엘도 음악가였으며, 그의 막내딸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첫 아내가 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조부 크리스토프는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 게오르크 크리스토프는 바흐 집안에서 처음으로 칸토르(교회 합창단장)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일란성쌍생아로서 모두 악사가 되었다. 이 암브로지우스의 막내아들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이후 바흐로 표기)이다. 마치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계보를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바흐는 족보 있는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처: 인물세계사

반응형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