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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설날이 구정과 신정으로 나누어져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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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선생 2025. 4. 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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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이동' 또는 '귀성 전쟁'으로 비유되는 귀성 문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주지.

요즘에는 자식들을 보러 도시로 올라오는 부모들이 많다지만 여전히 설날이나 추석이면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많아.


근대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른 특성이나 명절들 간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을 신년 의례로, 추석을 수확 의례로 표준화시켰어.

근대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곧 생산성과 연결되므로 설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장기간의 명절을 쇠는 전통을 계승하거나 지역에 따라 제각기 추석 또는 중양절을 선택하여 가을 명절을 쇠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표준화된 질서 체계를 확립하는 정책이 법정 공휴일 제도야. 법정 공휴일 제정은 근대사회에서 국가가 시간을 통제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거야.

음력은 달의 차고 기움을 기준으로 달을 나누고, 계절의 변화를 기준으로 해를 나누는 역법이야. 오랫동안 우리네 삶의 질서를 일구어온 시간 체계였지.

일할 때와 놀 때,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를 정하는 시간 체계는 모두 음력이었어.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사회에서는 음력 중심의 시간 체계 대신 서구의 태양력 중심의 시간 체계를 중심으로 생활 질서를 통제하기 시작했어.

1896년 1월 1일 김홍집 내각이 처음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새로운 시간 체계로 선포했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시간을 독점 관리하고 통제했어. 이때 쟁점은 양력과 음력이었어.

1910년대부터 일제가 양력을 사용하고 음력 폐지를 유도하면서 192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음력폐지론이 공공연하게 조선인 사회 내부에 등장했지.

음력폐지론의 초점은 음력설을 향하고 있었거든.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음력설은 버려야 할 과거 문화로 여겨졌어.

음력설을 구정, 양력설을 신정이라 칭하고 구정을 버려야 할 구습으로 치부했잖아. 보건사회부에서는 음력설을 버리고 양력설을 추진하는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어.

양력설을 주장하는 명분은 '문명한 나라에서는 모두 양력을 쓴다', '모든 선진 국가는 신정을 쇠는 것이 상식이다', '음력은 비과학적이다', '음력은 미신이다' 따위였어.

일제강점기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에도 정부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도록 단속했지. 1960년대에는 증산과 수출,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구정 공휴일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했어.

1970년대에는 근대화 및 근검절약을 주입하면서 역시 구정 공휴일 불가론을 펼쳤지. 심지어 정부에서는 구정 대신 신정을 법정 공휴일로 제정했어.

하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고수했단다. 정부의 시책은 음력설을 양력설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음력설과 양력설로 나뉘어 두 차례에 걸쳐 설을 지내는 결과를 낳았지.


정부의 음력설 폐지라는 강력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여론을 이끌어내지 못해 결국에는 19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됐어.

1989년에는 민속의 날이란 낯선 명칭 대신 우리 고유의 명칭인 '설'을 되찾게 됐지.

일제강점기부터 1985년까지 85년 동안 강력한 정책이 시행됐지만 양력설은 자리 잡지 못했어. 이제 음력설이 우리의 설날이지.

다른 것은 다 바뀌었는데 유독 음력설만큼은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 의례나 기념 투 쟁은 하나의 역사적 상징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새해 새 출발 하는 '설'만큼은 서민들의 뜻대로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출처 :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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