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를 개국한 시조로서 부족함이 없으며 그 개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현대에도 높은 편이 다. 정치력을 빼면 나라를 개창할 만한 역량은 넘치게 갖췄다는 평. 역성혁명에 대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과 희생, 고려에 대한 충정의 관점에서 비판적 시각이 일정 부분 정당성이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거나 당시 고려가 체제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대체로 동 의하고 있는 바이기에 고려를 붕괴시키고 정도전 등 개혁파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여 새로운 체제의 나라를 건국한 것은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가 분명히 적지 않다고 평가됩니다.
조선 왕조의 개국자였기에 조선 시대에 쓰인 기록에서는 행적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신격화도 많은 편이지만, 전반적인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에는 천하제일의 전쟁영웅이요, 당대 최강의 군인인 동시에 전설적인 용장이자 맹장, 명장이었다. 또한 적군인이나 오랑캐라고 해서 무조건 베어죽이지 않고 가능한 한 항복시켜 휘하 군인으로 포섭하는 관대한 면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히 전쟁 에는 영웅이라 할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군왕으로서는 행정적이나 정치적으로 정도전, 조준 등을 재상으로 세우고 신 국가의 기틀을 닦는 작업은 충실하게 행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고려 말 문제가 매우 많았던 토지겸병(土地倂 문제와 함께 국가가 아닌 개인이 조세를 거두는 사전(私田)까지도 모두 과감하게 혁파하고 경작자를 전객(客)으로 삼아 토지에 대한 권리를 합리적으로 보장한 것은 분명 혁명적인 변화였으며 이성계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화도 회군과 역성혁명으로 대변되는 그의 행보는 끝까지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최영, 정몽주와 대비되어 까이기도 하고 말년의 우유부단함과 때로는 냉혹해 보이는 몇 가지 사례들, 왕 씨 몰살 등으로 인해 비판받기도 합니다. 이성계의 집안은 고려→ 원→ 고려로 이어지는 배신을 저지른 주제에 백성과 신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다고 조롱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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