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의 제3대 황제(재위 1402-24). 이름 주체. 연호는 영락(永乐). 묘호 태종(太宗, 후의 成 祖). 시호는 문제(文帝). 영락제(永乐帝)는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의 26명 왕자 가운데 넷째 로 태어났으며, 주원장(朱元璋)이 1368년에 난징(南京)을 도읍으로 명을 건국하며 1370년 10세에 연왕(王)에 봉해졌고 1380년 20세가 되어 베이징을 근거지로 하여 국경지역에서 전쟁경험을 쌓았으며 1393년 북부 국경을 지키는 수비군을 통솔하게 되었다.
1392년에 황태자가 죽자, 황태자의 15세 아들이 후계자로 지명되며 1395, 1398년에 두 형의 사 망 및 1398년 홍무제(洪武帝)의 사망 후, 연왕(燕)은 신 황제인 조카 건문제(建文帝)의 지방권 력 약화정책에 반발하여 1399년 8월 반란을 일으켰고 1402년 7월에 궁정의 환관(宦官)들이 연 왕(燕王)의 군대와 내통하여 난징(南京, 남경)이 함락되면서 연왕(燕王)이 제위에 올랐다.
영락제 시대의 개혁정책은 번왕의 권력을 축소하는 것으로 번왕들을 전략적 요충지에서 중부와 남부지방으로 옮기고, 행정권을 박탈하여 이후 명은 번왕의 봉기로 인한 심각한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다. 영락제는 권력을 강화하고 젊은이들을 중용했으며, 환관(宦官)에게 외교사절, 감독관, 수비 대 등에 대한 감찰권을 부여하고, 1420년에는 동창(东敞)을 만들어 반역활동 색출의 임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영락제의 재위기간 중 강력한 정책으로 정치·사회·경제는 대체로 안정되었으며, 특히 1만 1,000권이 넘는 영락대전(永乐大典)이라는 기념비적인 문헌집 발간을 후원하였다.
또한 영락제는 1403년 환관들이 이끄는 3개 함대를 파견하였으며, 특히 환관 정화(和)는 1405-33년 함대를 이끌고 7차례나 항해하여 페르시아 만과 홍해뿐 아니라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최소한 37개 나라를 방문하였다. 1407년에는 난징(南京, 남경)에서 베이징으로의 천도를 추진하여, 1420년에 궁전이 완공되자, 1421년 천도를 실시하였으며, 1424년 몽고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병에 걸려 그해 8월에 진중에서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맏아들이홍희제(洪熙帝)로 등극하였다.
출처 :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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